
여름이 가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마당 끝 미아리 고개를 넘어올 때, 담벼락 아래 조용히 고개를 내밀던 꽃을 기억하시나요?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동요 <과꽃>은 저에게 '약속'과 '그리움', 그리고 먼 곳에 있는 소중한 이를 기다리는 '인내'를 가장 서정적으로 가르쳐준 노래입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는 과꽃의 모습은, 우리가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의 무게를 상징하곤 합니다. 이 노래 속에 담긴 '기다림'이라는 정서를 통해, 제가 화장품 소재 개발 현장에서 원료의 숙성(Aging) 기간을 견디며 깨달았던 시간의 마법, 그리고 천자문의 '待(기다릴 대)'가 담고 있는 정중하고도 단단한 마음가짐을 연결해 보고자 합니다. "아는 만큼 이해하고 경험한 만큼 공감하는" 서른여섯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 동요의 기억: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먼저, 가사만 읽어도 보라색 꽃잎 위로 하얀 그리움이 내려앉는 듯한 어효선 선생님의 가사 전문을 읽어봅니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살았답니다
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보면
꽃 속에 누나 얼굴 들어 있습니다
서울 가신 누나는 소식도 없고
과꽃만 마당에 피었습니다
어릴 적 이 노래를 부를 때는 그저 누나를 기다리는 동생의 마음이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조직의 팀장으로서 성과를 기다리고, 아이를 키우며 그 성장을 지켜보는 어른이 되어보니 제 마음을 붙드는 구절은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입니다. 소식이 없는 누나(목표)와 상관없이, 자기 차례가 되면 어김없이 약속을 지켜 피어나는 꽃의 성실함이 바로 우리가 삶을 대해야 하는 자세임을 이 동요는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2. 나의 경험: '기다림(待)'이 완성하는 발효 소재의 진심
저는 화장품 소재 개발 팀장으로서 미생물을 이용한 '발효 소재'를 연구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이 있어도, 발효에는 반드시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재료가 필요합니다. 온도를 맞추고 정성을 다해도, 미생물이 스스로 유효 성분을 만들어낼 때까지 연구원은 묵묵히 기다려야(待) 합니다.
연구실에서 발효 탱크를 지켜보며 제가 배운 것은, 억지로 서두른다고 해서 얻어지는 열매는 결코 깊은 맛(효능)을 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서울 가신 누나를 기다리듯, 원료가 스스로 완성될 때까지 신뢰하고 기다려주는 인내가 있을 때 비로소 피부를 치유하는 진정한 명품 소재가 탄생합니다. 직접 데이터의 변화를 살피며 계절을 넘겨본 연구의 시간이 없었다면, 저는 결코 동요 속 과꽃이 왜 소식 없는 누나 대신 마당을 지켜야 했는지 깊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3. 천자문으로 읽는 지혜: 待(기다릴 대)의 유래와 해석
천자문의 구절 중에는 어른을 모시고 가르침을 기다리는 태도를 뜻하는 '侍巾帷房 執熱願凉(시건유방 집열원량)'의 문맥 속에 '待(대)'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글자 모양은 '조금 걸을 척(彳)'과 '절 사(寺/관청 시)'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자원(字源)은 사람이 길(彳) 위에서 멈춰 서서 누군가 오기를 바라는 모습, 혹은 관청(寺)에서 정중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뜻합니다. 이는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니라, '예우를 갖추어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자 待는 우리에게 '대기(待機)'의 지혜를 가르칩니다. 기회(누나의 소식)가 올 때까지 자신을 갈고닦으며(과꽃 피우기) 준비된 자세로 자리를 지키는 것이 리더의 품격임을 보여줍니다.
4. 결론: 기다림(待)' 끝에 피어나는 보라색 그리움의 미학
어린 시절 아련하게 불렀던 <과꽃>이 이제는 제 커리어의 호흡을 조절해 주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꽃 속에 들어 있는 누나의 얼굴(이상향)을 이해하고, 소식 없는 현실 속에서도 예쁘게 꽃을 피워내는 그 꿋꿋함을 공감하게 된 것은 저 또한 팀장으로서 수많은 불확실한 프로젝트의 결과(누나의 편지)를 기다리며, 그 기다림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써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이해하고 경험한 만큼 공감하는"
제가 연구 팀장으로서 후배들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소재가 익을 시간을 주자"고 말하는 것은, 기다림(待) 없이는 결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향취가 나오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기나긴 터널 속에서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려본 사람만이, 지금 막막함 속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당신이 피워낸 과꽃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는 진심 어린 공감을 건넬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마당에는 어떤 꽃이 피어 있나요? 혹시 오지 않는 소식에만 매달려 당신이 피워내야 할 오늘의 과꽃을 시들게 하고 있지는 않나요? 待(대)라는 글자가 보여주듯, 당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기다림의 시간을 원망이 아닌 '피어남'으로 채울 때 완성됩니다. 과꽃처럼 맑고 정직하게 당신만의 약속을 지켜가십시오. 당신이 정성껏 자리를 지키며 꽃을 피우고 있을 때, 당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소식은 어느덧 가을바람을 타고 당신의 대문 앞까지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