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상상 속에서나 그리던 거대한 동물을 노래하며 코를 길게 늘어뜨리는 시늉을 했던 기억이 나시나요?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 이래"로 시작하는 동요 <코끼리 아저씨>는 저에게 '고정관념을 깨는 관찰'과 '서로 다른 존재의 조화'를 유쾌하게 가르쳐준 노래입니다. 남들과는 다른 모습(긴 코)이 누군가에게는 훌륭한 도구가 되고, 그것이 만남의 기쁨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지요. 이 노래 속에 담긴 '코'라는 신체 부위를 통해, 제가 화장품 소재 개발 현장에서 향료의 미세한 노트를 감별하며 깨달았던 예민한 감각의 가치, 그리고 천자문의 '聞(들을 문)'이 담고 있는 '살피고 깨닫는' 지혜를 연결해 보고자 합니다. "아는 만큼 이해하고 경험한 만큼 공감하는"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 동요의 기억: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먼저, 가사만 읽어도 덩실덩실 춤추고 싶어지는 김방희 선생님의 가사 전문을 읽어봅니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 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
코끼리 아저씨는 소방수래요
불이 나면은 코로 물을 뿜지요
산새들이 즐겁게 노래 부를 때
코끼리 아저씨는 잠만 자요
산새들이 즐겁게 노래 부를 때
코끼리 아저씨는 잠만 자요
어릴 적 이 노래를 부를 때는 코로 과자를 먹는 모습이 마냥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화장품 연구원으로서 '코'의 기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본 지금, 제 마음을 붙드는 구절은 "잠만 자요"입니다. 모든 이가 즐겁게 노래할 때 홀로 깊은 잠에 들어 감각을 가다듬는 코끼리의 모습에서, 저는 분주한 세상의 소음(聞)을 잠시 끄고 내면의 본질에 집중하는 리더의 고요함을 발견합니다.
2. 나의 경험: 향의 본질을 '듣는' 코의 예민함
저는 화장품 소재 개발 팀장으로서 매일 수백 가지의 향료를 맡습니다. 조향사들은 향기를 '맡는다'고 하지 않고 '듣는다(Listen to the scent)'고 표현하곤 합니다. 코라는 감각 기관은 단순히 냄새를 맡는 것을 넘어, 원료가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와 에너지를 읽어내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연구실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며 제가 배운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강한 향기보다 그 속에 숨겨진 은은한 베이스 노트(Base Note)를 찾아낼 때 진정한 조화가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코끼리가 자신의 긴 코로 과자도 받고 불도 끄듯, 우리도 자신의 강점(감각)을 다각도로 활용하여 타인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직접 수천 번의 샘플링을 통해 코의 감각을 훈련하며 원료의 정체성을 파악해 본 경험이 없었다면, 저는 결코 동요 속 코끼리가 왜 자신의 코를 손처럼, 소방수처럼 자유자재로 썼는지 깊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민하게 살피는 감각(聞)이 결국 최고의 공감(향기)을 만든다는 것을 현장의 연구 데이터를 통해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3. 천자문으로 읽는 지혜: 聞(들을 문)의 유래와 해석
천자문의 구절 중에는 성인의 가르침을 경청하는 태도를 뜻하는 '學優登仕 攝職從政(학우등사 섭직종정)'과 같은 맥락에서 '聞(들을 문)'의 지혜가 흐릅니다.
글자 聞은 '문 문(門)' 안에 '귀 이(耳)'가 들어 있는 형태입니다.
자원(字源)의 의미는 문틈으로 귀를 기울여 밖의 소리를 듣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소리가 들리는 상태가 아니라, '주의 깊게 살펴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자 聞은 우리에게 '경청'의 힘을 가르칩니다. 코끼리가 잠잠히 잠을 자며 숲의 기운을 느끼듯, 우리도 세상의 문(門)을 열고 귀(耳)를 열어 타인의 아픔과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야 한다는 삶의 지혜를 전합니다.
4. 결론: '소리(聞)'보다 깊은 본질을 감각하는 법
어린 시절 마냥 재미있게 불렀던 <코끼리 아저씨>가 이제는 제 전문성의 깊이를 재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코가 손이 되고 소방수가 되는 다재다능함을 이해하고, 산새들의 노래 속에서도 고요를 지키는 그 묵직함을 공감하게 된 것은 저 또한 팀장으로서 세상의 수많은 목소리를 듣고(聞), 그 안에서 우리 팀이 가야 할 본질적인 길을 찾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이해하고 경험한 만큼 공감한다."
제가 연구 팀장으로서 화려한 스펙보다 팀원의 작은 의견을 경청(聞)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진정한 혁신은 큰 목소리가 아니라 문틈 사이로 들려오는 아주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소음 속에서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지금 혼란스러워하는 누군가에게 "잠시 잠을 자듯 고요히 본질에 귀를 기울이라"는 진심 어린 공감을 보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듣고, 어떤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나요? 혹시 남들의 화려한 노래에만 신경 쓰느라 당신만이 가진 특별한 '코(재능)'를 잊고 있지는 않나요? 聞(문)이라는 글자가 보여주듯, 당신의 진정한 성장은 세상의 문을 열고 타인의 마음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시작됩니다. 코끼리 아저씨처럼 때로는 묵묵하게, 때로는 예민하게 본질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당신이 소음(Noise)을 걷어내고 진심의 소리(Signal)를 듣기 시작할 때, 당신의 인생은 동요처럼 유쾌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는 향기로운 서사를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